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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로 던진 화두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정부 예산 0.2%에 불과한, 작디작은 부서 여가부는 선거판이 돌아올 때마다 정치인의 입길에 오르내린다. 때로는 청년층 공략으로, 때로는 전체 부처 개편의 일환으로 모습은 달리했지만 본질은 같다. 20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여가부 폐지론은 역시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을 타고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가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 등의 발언으로 해체를 공약했다.

해체론은 당분간 후순위로 미뤄졌다. 윤 당선인은 해체 공약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로 여가부 장관을 내정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는 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의식한, 또다시 정치적 판단의 결과다. 정치판에 오래 끌려나와 있을수록 여가부가 흔들리는 폭도 커진다. 부처가 흔들리면 부처 사업과 연관된 이들의 삶도 불안정해진다. 여가부 본연의 가치인 성평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젠더갈등’이라는 편협하면서도 손쉬운 프레임에 틈만 나면 갇혀버린다.

대선은 끝났다. ‘표 계산’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여가부의 소명은 무엇이고, 그 소명을 다하기 위해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답을 내놓을 차례다.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10일 여성가족부폐지 공약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여가부 폐지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10일 여성가족부폐지 공약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여가부 폐지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일곱 글자의 가벼움

차별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서 차별이 일거에 해소되는 건 아니다. 차별을 ‘모른다’고 차별이 ‘없다’ 말해서도 안 된다. ‘한국이 조작할 여지가 없는’ 국제 통계는 윤석열 당선인의 인식과 정확히 반대를 가리킨다. 젠더개발지수(GDI) 36개 OECD 회원국 중 35위(2019), 성별임금격차 지수(31.5%) 26년 연속 OECD 최고(2020), 유리천장지수 10년 연속 OECD 꼴찌, 성격차지수(GGI) 156개국 중 102위(2021)가 한국의 현주소다. 주로 고용과 경제영역에서 성불평등이 큰 탓이다.

여성부(여성가족부 전신)의 당초 소명은 ‘여성 차별과 폭력 철폐’였다. 여성부를 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10년 자서전에서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시작부터가 소멸을 지향하는 부서란 뜻으로, 거꾸로 보면 이 말은 성평등이 이룩되지 않는 한 여성부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194개 국가가 성평등 전담 기관을 보유 중이다(2020년 기준). 독립부처(부/청) 형태가 160개국으로 가장 많고, 하부조직형 13개국, 위원회형 17개국, 기타 비정부기구형이 4개국이다. 개중에는 소위 ‘성평등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도 있다. 소명을 다하기, 즉 성평등을 완성하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가부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으니 해체한다”는 주장의 실체는 무엇인가.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백래시(반동)’라고 짚었다. 그는 “불평등을 체감하는 방식이 다를 수는 있다. 문제는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인데, ‘나와 똑같아지는 건 안 되지만 조금은 개선해주겠다’,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지 않았느냐’라고 하는 게 바로 백래시”라고 말했다. 김현미 교수는 “항상 과거를 준거로 삼아야 하나. 정책은 과거를 준거로 만드는 게 아니다. (실제 차별을 겪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플랫]“제1야당이 기름 붓는 여가부 폐지론… 백래시가 체계화되고 있다”
📌[플랫]‘청년문제=남성문제’가 돼버린 대선, 그게 성차별 사회라는 증거다

강이수 상지대 교수는 이 공약이 ‘청년’정책으로 ‘공정’과 결부돼 나온 점에 주목했다. 과거에도 대선후보들이 여성부 폐지를 공약한 적 있고, 통일부나 교육부도 해체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청년층을 타깃으로 하지는 않았다. 강 교수는 “과거엔 미니 부서인 여성부에 대한 일종의 무시였다면, 이번엔 청년세대가 남녀 공히 가지고 있는 불안을 정치권이 젠더갈등으로 증폭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20대 여성과 남성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고, 일과 관련된 생애 전망을 추구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이를 갈라치는 건 과연 청년들이 처한 객관적 상황을 제대로 보고 내놓은 정책인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위원회·기능 이관은 ‘실패한’ 경험

여가부가 바로 그 ‘소명’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가부 20주년을 맞아 지난해 발간한 연구보고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속 전문가 델파이 조사결과에 힌트가 있다. 델파이 조사는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발전시키는 연구 방법이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비해 응답자가 성평등 정책의 맥락과 정부 직제를 잘 알고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연구에 응한 교수, 연구원, 성평등 업무 담당 공무원, 여성단체 활동가 등은 여가부가 성별 영향평가, 성인지 예산 등 성 주류화(타 부처 정책에도 성평등의 관점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를 위한 정책도구를 제도화한 점을 주요 성과로 봤다. 한계점으로는 여가부의 권한이 제한적이고 위상이 취약하며, 성차별 시정기능이 부재하다는 점을 꼽았다. 이들은 여가부 명칭을 개편할 때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단어로 ‘성평등’을 주로 언급했으며, 대안으로서 여가부 기능 강화·예산 확대가 대통령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장관직의 부총리급 격상보다 더 시급하다고 봤다.

차별의 존재 부정 말고 여성가족부를 허하라[플랫]

일각에서 제기하는 위원회 안은 위원회의 권한과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의결기구와 자문기구 중 무엇으로 할지부터 실제 행정을 하지 않는 조직인 위원회에 대통령이 얼마나 힘을 실어주느냐까지 변수가 많다. 위원회가 ‘상징적 기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무총리실 소속 양성평등위원회(자문기구)를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지만, 회의를 일년에 평균 두차례 정도 여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도 서면으로 진행할 때가 많다. 역사를 돌아보면 여성부 자체가 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도입된 체제다. 전직 장관 A씨는 “과거 여성특별위원회를 해봤지만 결국 부처 형태로 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여성부를 만들었다. 위원회 체제는 이미 다 해봤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식의 폐지 혹은 개편인가도 관건이다. 여가부 해체론을 뒷받침하는 전형적인 주장은, 아동·청소년·가족 관련 기능은 보건복지부에, 여성 고용 문제는 고용노동부에 넘기면 된다고 한다. 이는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시행착오를 겪었던 방안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한 이후,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여기서 보육과 가족정책을 다시 떼어내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하고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축소했다. 2010년 다시 가족·청소년 정책을 여성가족부로 되돌렸다. 가족정책과 여성정책이 따로 노는 문제, 다문화 가족 등에 대처하고자 한 조치였다. 현재 여가부는 2실·2국·3관·1대변인·26과·1팀으로 구성되며 정원은 275명이다. 기능별 예산을 보면 ‘여성’보다는 ‘가족’에 방점이 찍힌다. 2021년 기준 가족정책(59.7%)과 청소년정책(19.3%)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권익증진(9.9%)과 여성정책(7.1%)이 뒤를 이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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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정치 이슈화된 폐지론, 사실 아닌 내용 알려야” 여가부 차관이 직접 입 열었다

📌[플랫]정현백 “여가부 폐지론은 지지층을 이념과 성으로 가르는 정치 전술”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무엇보다 전체를 부분의 단순한 합으로 봐서는 안 된다. 유관 기능이 한 부처 안에 모여 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삶이 여가부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들은 여가부를 쪼갤 경우 지원 기능의 약화를 우려한다. 구본창 ‘양육비안주는사람들(구 배드파더스)’ 사이트 대표는 “여가부가 일을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예산이나 권한이 없기 때문에 한계를 보인 측면도 많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대표적”이라며 “다른 부서는 가정의 특수성, 아동과 여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가 쉽기 때문에 여가부가 더 기능을 확장하고 이런 문제를 통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이모씨 또한 지난 4월 16일 열린 여가부 폐지 반대 말하기 대회에서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할 때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여가부의 상담소였다. 고통받는 여성의 삶을 회복시켜주는 섬세한 곳”이라며 “여가부 폐지 공약은 많은 피해자의 용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최형숙 대표는 “여가부가 지원금뿐만 아니라 (미혼모를 비롯한 다양한 한부모 가족) 인식 개선, 비양육자의 책임 강화까지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기능만 찢어서 다른 부서로 옮기면 단순 지원 업무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타 부서로 갔을 때 기존에 정해진 지원 예산을 그대로 쓰더라도, 앞으로 그 몫이 더 올라갈 일은 없지 않겠나”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플랫]대책없는 여가부 폐지론이 외면한 사람들

여가부 폐지 공약의 등장 이후 건설적인 개편 방향을 두고 각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해체 이후’ 로드맵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은 앞으로 나올 방안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앞서 여성계는 안철수 인수위원장과 김현숙 정책특보 등을 면담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별다른 구체안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면담에 참석했던 김은경 한국YWCA 성평등정책위원장은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의 정치적 의지가 중요한데, (현재로선) 어떤 안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당선인의 의지 문제가 가장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선거란 맥락에서 눈치를 보느라 당선인도, 장관 후보자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판단뿐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4월 10일 김현숙 정책특보를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폐지를 공언한 부서에 장관을 임명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셈이다. 김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고용복지비서관을 거쳤고, 인수위 정책특보를 맡아 여가부 폐지, 저출산·고령화 관련 정책 등을 담당했다. 이번 지명을 두고 “시한부 장관이다.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발표하고 사퇴해야 한다”(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아마 인구정책을 비롯한 미래정책을 담당할 부서 신설을 검토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의 평이 나왔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4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4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해체를 공언한 부처에 장관을 지명해 해체 업무를 맡기는 일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 이른 건 여가부 폐지 공약에서 장관 내정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줄곧 ‘정치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대선과 취임 이후 곧바로 닥칠 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의식한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권수현 여성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지방선거가 걱정돼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여가부 폐지를 뒤로 미루려는 정치적 판단이다. 자신 없음을 내보이는 행동”이라며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 이들이)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여성 장관을 내세우는 비겁한 방식의 싸움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신율 정치평론가는 로드맵을 밝히지 않는 것 또한 일종의 정치적 전략이라고 봤다. 그는 “로드맵이 없어서 말을 못 한다기보다는 모호한 전략을 취해 여성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남성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 이슈 파이팅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여가부 폐지 공약 자체가 윤 당선인의 전체 선거 전략 속 한 부분으로 나왔기 때문이며, 앞으로 여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팎의 관측을 종합하면 김현숙 후보자는 여가부에 가서 당선인이 부여한 소기의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4월 10일 장관 후보자 인선 발표 기자회견에서 “가족 문제의 경우 새로운 시대에 맞게 만들어가면서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고 야당과 화합하고 미래를 열 수 있는 새로운 부처로 갈 수 있도록 충분한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했다. 전 장관 A씨는 당장 폐지되진 않는다 하더라도 여가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사례 자체가 처음인데다 장관으로선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면 여가부는 존폐 문제가 확정될 때까지 동력을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새로운 일이나 특별한 사업을 벌이긴 어려울 거다. 여가부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 여성정책에도 타격이 갈까 우려스럽다. 일단 새 장관이 어떤 그림을 내놓을지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관은 트로이 목마?

김현숙 후보자는 향후 어떤 구상을 내놓을까. 김 후보자의 그간 이력이 여가부 업무와 아예 무관하지는 않다. 오히려 성별 임금격차와 경력단절 같은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경제학자로, 그동안 여성 일자리와 출산율 정책에 관한 연구를 해 왔다. 김현숙 후보자는 2019년 ‘여성경제연구’에 발표한 논문 ‘OECD 국가들의 출산율 결정요인: 가족친화정책과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성별 경제활동 참가율이나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보다 양성평등적인 환경이 마련된다면 합계출산율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중앙과 지방정부 출산율 제고 정책 효과성 분석: 유배우 출산율을 중심으로’(2021)에선 “주택, 일자리, 젠더갈등 등 결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요인을 고려해 혼인율 하락에 관한 연구를 함께 시도해야 출산 지원정책의 효과성도 포괄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했다.

비례대표 의원이던 19대 국회에선 “여가부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여성과 남성, 가정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할 때 그런 부분(폐지 의견과 사회적 편견)이 불식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김 후보자는 특정 성별이 정부 위촉직 위원의 6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안, 지역구 여성 공천비율 30% 이상을 의무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20대 대선이라는 ‘정치의 시공간’에서 튀어나온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는 지방선거가 지나간 이후 서서히 그러나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실제로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한동안 의회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여성계의 거센 반대도 변수다. 그 속에서 김현숙 후보자는 스스로는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한 대통령을 따라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다. 김현미 교수는 “김 후보자가 여가부에 가서 ‘실패한 개혁자’가 아니라 실제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성평등과 고용, 복지에 주력할 수 있는 변혁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여성가족부(여성부)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부서가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부 탄생은 국제적 흐름에 발맞추려는 노력,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의지, 정치지도자의 호응이 맞아떨어진 결과이자 성과였다. 2001년 창립된 여성부는 이름만 3번 바뀌어 현 여성가족부에 이르렀다.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윤석열 당선인 측이 2021년부터 제기한 폐지론과 개편론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그럼에도 여성가족부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오는 5월 10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여성가족부 역사에 어떤 공과를 추가할까.


■위원회 한계 넘어 여성부를 갖기까지

한국은 1975년 ‘유엔(국제연합) 세계 여성의 해’를 계기로 여성 정책, 여성 관련 기구의 필요성을 인지했고,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을 세웠다. 더불어 국무총리실 산하에 여성정책심의위원회를 설치했다. 한국여성개발원은 여성 관련 연구, 교육, 국제협력, 홍보 등을 맡고 이를 정책으로 세우는 일을 여성정책심의위원회가 한다는 구상이었다. 1988년엔 제2정무장관실이 여성문제 전담기구로 등장했다. 제2정무장관실은 부서는 아니었기에 정책 권한상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 제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제작한 TV광고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제작한 TV광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가 제2정무장관실을 폐지하고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당초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부 설치를 공약했으나, IMF 외환위기 극복이 당면 과제인 점을 고려해 우선 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장은 한국 최초 여성 헌법학자로 꼽히는 윤후정 전 이화학당 이사장(90·당시 이화여대 교수)이 맡았다. 여성특별위원회는 국무위원(장관)급 위원장, 민간위원, 6개 부처 차관으로 구성돼 주요 정책을 ‘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위원회가 조정을 맡고, 법무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노동부 등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을 둬 협력한다는 틀이었다. 여성특별위원회의 정책기조는 ‘여성정책 주류화’, 즉 다른 부처의 정책에도 성평등의 관점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었고, 성평등의 사회적 실현을 목표로 내걸었다.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을 1999년 2월 제정(7월부터 시행)했다. 여성특별위원회의 주요 성과 중 하나다.


위원회 체제로는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특별위원장은 국무위원급으로 국무회의에 배석할 수 있고 의견도 낼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의결권이 없었다. 또한 정부 부처가 아니었기 때문에 법령안 제안도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상징적 기구’로만 그치기 쉬운 구조였다. 이에 2001년 1월 29일 여성부가 탄생했다. 1실·3국·1심의관·1공보관·3담당관·8과 총 102명 규모로, 18개 부처 중 가장 작은 ‘미니 부서’였다. 초대 장관은 한명숙이 맡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여성부 출범 1주년 기념식에서 “앞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여성인력 활용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 자서전>에 나오는 표현을 빌자면,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였다.


■다시 도전에 마주하다

여성부 신설은 여성계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성과였다. 당시 여성계는 반여성적 정책과 후보에 대한 낙선·낙천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호주제 폐지 움직임도 1990년대 이미 이어지고 있었다. 김영미 상명대 교수는 2001년 한국행정학회에 투고한 글에서 “우선 여성부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집단은 단연 여성단체일 것이다. (중략) 의회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여야 어느 쪽의 공방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했다. 즉 여성부 창립은 ‘여성부를 만들면 남성 표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보다 ‘여성부를 만들지 않으면 여성 표가 떨어질 것’이란 압박이 더 컸던 결과다.


이후 ‘참여정부’에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했다. 복지부의 가족정책을 이관했다. 뒤이은 이명박 정부는 시작부터 ‘작은 정부’를 표방했고 통일부와 여성부 폐지를 추진했다. 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 해체론이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란 의미다. 해체까지 하진 못했다. 2008년 가족 및 보육정책을 다시 복지부로 넘기는 바람에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쪼그라들었다. 2년 뒤에는 복지부의 청소년·가족 기능을 다시 이관해 여성가족부로 확대한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교육부(1948년 문교부), 농림축산식품부(1948년 농림부) 등에 비하면 여성가족부는 새천년에야 등장한 ‘젊은’ 부서다. 그 짧은 역사에 비해 덧씌워진 오해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여성부가 특정 과자 판매를 금지했다’, ‘전 세계에 여성부가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등이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 7월 ‘여성가족부에 대한 오해, 사실은 이렇습니다’란 팩트체크 자료를 배포해 이 같은 루머를 반박하고 나섰다.


뼈아픈 실책도 있었다. 이정옥 전 장관이 2020년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박원순·오거돈 사건은 권력형 성범죄인가”란 질의에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답한 게 한 예다. 박원순 성폭력 폭로자를 뒤늦게 ‘피해자’로 언급한 것을 포함해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기관으로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질곡의 역사를 돌고 돌아 여성가족부는 다시 정치판에 불려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이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란 단 일곱 글자로 해묵은 논제에 불을 댕겼다. 최근엔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박근혜 정부 고용복지수석)를 여성가족부 장관에 내정해 “해체 로드맵을 짜라”는 임무를 맡겼다. 여성계는 공약 단계에서부터 우려를 표명했고, 집회를 비롯해 폐지 철회 요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도 ‘해체 반대’ 입장이다. 과거 여성부를 만들었던 힘이 이젠 여성가족부 폐지를 막을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윤석열 정부에서 결론이 날 전망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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