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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스물스물] `익명출산`이 돕지 못하는 미혼모들…"출산·양육 홀로 해내야"

김금이 기자
입력 : 
2020-12-13 05:41:58
수정 : 
2021-04-27 14: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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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시 친모 신상 가리는 `보호출산제`
영아 유기 사건에 초점…"극단적 선택만 강요"
미혼모들 "경제난·주변 편견 가장 힘들어"
※스물스물은 '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거나 첫 발을 내딛고 스멀스멀 꿈을 펼치는 청년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매일경제 사회부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20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참신한 소식에서부터 굵직한 이슈, 정보까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11살 남자아이를 자녀로 둔 미혼모 안소희 씨는 대학생 시절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주5일 출근해 양육비를 벌고 싶었지만, 당시 소득이 150만원을 넘으면 한부모 가정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씨는 "소득이 기준에서 만원이라도 넘어가면 가차없이 탈락하기 때문에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5살 아이를 둔 미혼모 A씨는 자녀의 중학교 입학을 위해 교육청 공무원과 면담 중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공무원이 A씨에게 왜 결혼을 안 했는데 아이가 있는 지 캐물었다는 것이다. A씨는 "결혼을 안 했다고 하니까 입양을 한거냐고 여러번 물어봤다"며 "미혼 여성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단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게 공무원 집단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영아 중고거래와 유기사망 사건 등이 화제가 되면서 정부가 지난달 '보호출산제' 등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는 미혼모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코로나19로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여성을 도울 수 있도록 출산 전부터 양육까지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사진설명
지난달 25일 미혼모·한부모단체 및 아동인권단체가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보호출산제를 비판했다. [사진=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최근 서울 종로구 커뮤니티센터 늘봄에서 만난 미혼모들은 정부 정책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형숙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정부가 누구를 만나서 물어봤길래 보호출산제란 정책을 생각해낸 건지 모르겠다"며 "유기 사건이 화제가 되니까 단순히 출생신고를 가명으로 하게 해주면 없어질 거라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아이가 부모의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도 알권리 침해"라고 덧붙였다. 보호출산제는 지난달 16일 정부의 '미혼모 등 한부모가족 지원 대책'에 포함된 내용으로, 출생신고 시 친모가 가명을 사용하거나 신상을 가릴 수 있게 한 '비밀 출산제'다.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 영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사건을 막겠단 취지지만 정작 미혼모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한부모·아동인권단체들은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필요한 건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강력한 위기임신출산지원"이라며 "충분한 지원체계 없이 보호출산제만을 도입하는 것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여성에게 극단적인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임신 경험이 없는 젊은 여성이나 청소년들은 홀로 아이를 임신했을 때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에선 한 20대 여성이 임신 9개월이 가까워서야 임신 사실을 알고 자택 화장실에서 아이를 사산한 뒤 시신을 방치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재판부는 "홀로 출산의 고통을 겪은 후 배출된 태아가 사망한 사실까지 확인했으므로 사건 당시 극도의 당혹감과 공포심을 느꼈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아이를 책임지고 양육하려 해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은 한부모가족으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중위소득 52%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올해 2인가구 기준 월 소득이 약 155만원이 넘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최 대표는 "엄마의 삶의 질이 높아야 아이를 건강하게 양육하는데 청소년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이 없어 하루에 삼각김밥 하나만 먹고 버틴다고 한다"며 "현실적으로 아이와 함께 살려면 저축 없이 한달에 최소 230만원은 필요하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도 큰 벽이지만 미혼모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의 손가락질이다. 미혼모 안씨는 "아이 담임선생님도 아빠가 없어서 불쌍하다, 그렇게 자란 것 치고 밝고 착하다, 어디 많이 데리고 놀러다녀달라는 얘기를 한다"며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실수를 하거나 거짓말을 해도 '아빠가 없어서 그렇다'는 시선으로 본다"고 했다. 35살에 아이를 낳은 최 대표도 "내 이름으로 샵도 하고 돈도 잘 벌던 때인데 왜 애아빠가 없냐며 주변에서 '원나잇', '불륜'일거란 소리가 들려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비혼 출산으로 응원과 지지를 받은 방송인 사유리 씨와 다를 바 없이 자신들도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고 책임지는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8살 아이를 둔 미혼모 함씨는 "미혼모는 남자에게 버림 받고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며 "우리도 사유리씨처럼 매 순간이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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