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 아이… 입양 보낸 친모는 평생 죄책감 [피멍 든 동심, 외면한 국가]

친모들 생활고에 시달리다 입양 선택
아이 학대당해도 소식 듣지 못해
사실 알아도 ‘친권포기’ 이유로 차단
“지금 옆에 있는 아이 손 놓지 마세요”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 관련 양부모의 첫 재판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 정인이를 추모하는 화환과 인형이 놓여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아직도 꿈속에 아이가 나타나고,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린 미혼모·한부모·아동인권단체의 기자회견에서 편지 하나가 낭독됐다. 과거 또 다른 입양아학대사망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친모 A씨가 이번 사건을 보고 보내 온 내용이다.

 

서울 양천구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과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충격과 분노를 표출하며 재발 방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같은 양상으로 되풀이됐다. 이 과정에서 아이를 입양 보냈다가 잃은 친모들은 죄책감과 충격 속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미혼모였던 A씨는 수년 전 생활고 등으로 더 이상 자식을 키울 수 없어 입양기관을 통해 아이를 입양보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가 자라길 기대하며 한 선택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는 파양 후 다른 가정에 입양되기를 수차례 반복한 뒤 결국 마지막 입양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A씨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A씨는 “이러한 사실을 입양기관에서는 친모인 저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며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하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이러한 사건이 수도 없이 반복됐지만 친모들은 관련 내용들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친권포기각서’를 구실로 친모의 죄책감을 부채질하고, 설사 아이의 학대 사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협박과 회유를 병행하며 아이와 최대한 차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A씨는 “양부모에게 친권이 넘어간 탓에 아이의 친권조차 찾지 못한 채 가해 양부모의 성씨로 아이의 장례를 치렀다”며 “(아이는) 한 줌의 재가 돼서야 제 품에 돌아왔다”고 사연을 털어놓았다.

A씨는 “지금도 아이를 입양 보낸 것에 너무나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며 입양을 고민하는 친모들을 향해 “지금 옆에 있는 아이의 손을 놓지 마세요”라고 호소했다. 이어 “(다른 아이들이) 입양아가 돼 저의 아이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길 바란다”며 “정인이에게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A씨와 같은 친모들은 사건 후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학업이나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숨어 지내다시피 하며 심리적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제난 등이 겹쳐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해 미혼모의 낙인을 찍을 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인 양을 입양한 후 수개월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남부지검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이 '살인죄 처벌'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최형숙 대표는 “입양아학대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후속대책이 마련됐지만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